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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찰리 채플린 - 황지우 영화 끝장면에서 우리의 "무죄한 희생자" 찰리 채플린이 길가에서 신발끈을 다시 묶으면서, 그리고 특유의 슬픈 얼굴로 씩 웃으면서 애인에게 "그렇지만 죽는다고는 말하지 마!" 하고 말할 때 너는 또 소갈머리 없이 울었지 내 거지 근성 때문인지도 몰라 나는 너의 그 말 한마디에 굶주려 있었단 말야; "너, 요즘 뭐 먹고 사냐?"고 물어주는 거 聖者는 거지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너도 살어야 헐 것 아니냐 어떻게든 살어 있어라 2022. 4. 22.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 황인숙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비가 온다구! 나의 소중한 이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2022. 4. 21.
꿈꾸는 누드 - 신현림 이 남자 저 남자 아니어도 착한 목동의 손을 가진 남자와 지냈으면 그가 내 낭군이면 그를 만났으면 좋겠어 호롱불의 누드를 더듬고 핥고 회오리바람처럼 엉키고 그게 엉켜 봤자라는 걸 알고 싶고 섹스보다도 섹스 후의 갓 빤 빨래 같은 잠이 준비하는 새 날 새 아침을 맞으며 베란다에서 새의 노랫소리를 듣고 승강이도 벌이면서 함께 숨 쉬고 일하고 당신을 만나 평화로운 양이 됐다고 고맙다고 삽십삼년을 기다렸다고 고백하겠어 2022. 4. 20.
꿈의 페달을 밟고 - 최영미 내 마음 저 달처럼 차오르는데 네가 쌓은 돌담을 넘지 못하고 새벽마다 유산되는 꿈을 찾아서 잡을 수 없는 손으로 너를 더듬고 말할 수 없는 혀로 너를 부른다 몰래 사랑을 키워온 밤이 깊어가는데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2022.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