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1 「소설가의 일」중에서 ▒ 초고를 작성할 때, 내가 음식물쓰레기통에서 넘쳐흐른 거만 같은 문장을 써내려가는 까닭은 거기에 내가 묘사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쓴다는 게 고작 "그녀는 질투심이 강한 여자였다. 자존심도 센 여자였다" 같은 문장들이다. 이건 소설의 문장이 아니라 시놉시스의 문장이다. 투자자들 앞에서 PPT로 스토리를 보여줄 때나 필요할까, 소설책에서는 판권란에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종류의, 뭔가 시큼한 냄새에다가 걸쭉한 액즙, 그리고 흐물흐물한 건더기 같은, 이 꼴로 봐서는 곧장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게 상책인 문장이다. 초고에는 이런 문장들이 가득하다. 경험상 말하자면, 적어도 일주일은 이런 문장들을 쏟아내야만 소설의 문장을 얻을 수 있다. pp34~35 ▒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내가 찾아내려고 하는 .. 2023. 2. 1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