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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글쓰기 과제

by 꿈의 페달을 밟고 2023. 4. 18.

  7월 중순, 엄마는 하숙집을 열었다. 나는 엄마가 시킨 대로 달력을 그려 방문마다 붙였다. 같이 놀 친구가 있나, 붓글씨와 독서가 취미이던 엄마가 붓과 책 대신 종일 고무장갑 아니면 걸레만 쥐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이왕 하는 김에 엄마가 좋아하는 파란색 A4지 위에 흰색 펜으로 달력을 그려서 방마다 붙였다. 점심식사에 참석하는 날에는 동그라미를, 그렇지 않은 날에는 아무 표시도 하지 말라고 써두었지만 대학생 언니오빠들은 동그라미를 그린 날에도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나가버리거나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은 날에도 표시한다는 걸 깜빡했다면서 등장했다. 여덟 명 모두 온 날도, 한 명도 안 온 날도 있었다. 8월이 되어도 언니오빠들은 변한 게 없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미대 언니 한 명은 “어머니 도와드리느라 고생이 많네. 착하다.” 했을 뿐이다. 나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동그라미 표시한 날에 점심 먹으러 나오기나 하지. 엄마의 열의와 나의 정성은 약 한 달간 초지일관 무시당하다가 비자발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엄마는 몇 인분은 차려야 할지 감이 안 잡히지만 그래도 개업 초기부터 ‘컴플레인’을 들을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은 즉, 지름이 내 키만 한 원탁을(전학 첫날 나를 보자마자 키를 언급하며 자기가 170.2센티미터라고 주장하는 담임과 나란히 서봤는데 내가 미세하게 더 컸다) 반찬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고기반찬이 고정적으로 올라왔다. 그래도 대학생 언니오빠들보다 입도 안 달린 의자들이 더 많이 버티고 앉았고, 가끔씩 얼굴에 개기름이 번드르르한 아빠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와서 좌절의 냄새를 풍기면서 음식을 욱여넣었다. 그 와중에 장사도 모르는 주제에 어머니가 집을 팔아 주신 돈도 얼마 안 남았는데 자꾸 쏟아 붓기만 한다고 면박도 주고. 엄마가 사돈의 팔촌의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 모은 덕분에 하숙집에 8명이나마 채운 건데. 갈수록 풀과 밀가루와 국물이 자주 올랐다. 엄마의 기대가 밥상머리에서만 어긋난 게 아니다.

  엄마는 이 하숙집을 열면서 내게 좋은 대학 다니는 언니오빠들한테 모르는 거 있으면 눈치껏 물어보고 캠퍼스에 가서 폼 잡고 공부하고 놀고 좋은 기를 받으라고 했지만, 캠퍼스에서 폼 잡는 것 까지는 좋은데 ‘무언가 하고 놀고’라는 부분에서 ‘춤추고 놀고’ 혹은 ‘뛰어다니고 놀고’는 말이 되어도 ‘공부하고 놀고’를 납득할 수 없었고, 신촌 한복판에 자리 잡고 첫새벽부터 취객의 곡소리나 오장육부까지 다 게워낼 것처럼 토하는 소리가 여실하게 들리는 저렴한 곳에서 하숙하는 대학생이 문에 붙인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 하나 안 해주는 마당에 주인아줌마의 중학생 딸이 찾아간다고 해서 돌봐줄 거라는 기대 또한 어불성설이었다. 현실과 타협하는 동시에 평소 성적이 좋아 선생님의 관심을 받던 아들과는 사뭇 다른 딸을 신경 쓴다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오늘 엄마는 개업 후 한 달이 되었으니 자체평가를 해보더니 결국 저녁상부터 반찬 수를 줄였다. 국물 음식을 중심으로 동심원 모양으로 배치한 반찬 중 가장 바깥쪽 원이 통째로 비었다. 주로 나물과 김을 놓던 자리였다. 준비하기 번거롭던 나물은 몸집을 줄여 안쪽 줄 틈새로 편입했다. 식탁의 빈 구석에는 아빠의 말이 차고 들어갔다. 이거 보레이, 니가 사업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나서고 그카노? 내가 이렇게 될끼라고 했나 안 했나? 하면서. 괜찮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명언처럼 ‘꾹 참고 버티면 시간이 나를’ 이놈의 집구석에서 ‘구해줄 것’이다. 시간은 배신하지 않고 내게 개학을 선물했다. 이번 주만 넘기면 된다. 역시 외할머니는 옳다. 하지만 방과 후에도 집에 안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은 내가 쟁취해야만 한다.

  “엄마, 미안한데, 나 학원에 보내줘요.”

  ‘미안한데’라고 말하면서 생각해본다. 한국의 중1이 학원에 다니게 해 달라는 말을 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 왼쪽 팔을 식탁에 걸치고 고개를 숙인 채 우물우물 밥만 먹던 엄마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음식을 씹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니, 돌대가리가? 지금 집 상황이 어떤지 모리나?”

  “알아요. 돌대가리라서 학원 다니겠다고요.”

  “말본새 봐레이. 어마이가 아를 우예 키았길래... 중학생씩이나 돼 가꼬 아부지한테 대드노! 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엄마가 음식을 씹으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되니까 이러죠.”

  “니 같은 것도 내가 우습나? 태도가 아주 삐딱하다이?”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픽 나와 버렸다.

  “얘!”

  엄마가 드디어 입 속 음식을 다 씹고 일어나며 손을 뻗었다. 아빠와 똑 닮은 눈을 치켜뜬 내게 파리채보다도 큰 아빠의 손이 날아왔다. 경주 언니가 주방으로 오다가 황망하게 뒤로 도는 모습에 아빠가 놀라 움찔하고, 엄마가 손을 뻗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머리 대신 뺨에 불그죽죽한 손자국이 남았을 것이다.

  “경주야, 얘 좀 데리고 나가서 저녁 좀 같이 먹을래?”

  엄마가 글자 그대로 경주 언니 등을 떠미는 바람에 우리는 아빠의 패악에서 벗어나서 하숙집 건물 1층의 춘천닭갈비집에서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미대 언니처럼 경주 언니와 나도 화장실 앞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경주 언니의 방은 문간방이었고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낡아빠진’이라는 말 이외에는 갖다 붙일 게 없는 엄마의 하숙집은 대문 옆에 남녀 공용 화장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방은 우리 집에서도 가장 싼 방이었다. 1인실로 내놓기에는 크고 2인실로 내놓기에는 작은 방을 2인실로 내놓는 대신에 싸게 내놓은 곳이었다. 보통 1인실에는 침대와 책상 사이에 요를 세로로 접으면 꽉 차는 정도의 공간이 났고 2인실에는 발치에 책상이 달린 침대가 두 개 있어 침대가 곧 의자 역할을 했다. 물론 2인실에는 두 개의 침대 사이에 요를 하나 깔 공간이 나왔다. 경주 언니의 방은 침대 하나, 책상 하나, 그 사이에 요가 한 장 깔리는 크기였다. 우리는 “먹자” 나 “네” 같은 걸 제외하고는 별 다른 말없이 어색해하며 닭갈비를 먹고 일어났다. 그날 밤 엄마는 매실청을 소주잔에 따라서 경주 언니의 방으로 가서 닭갈비 값과 함께 건넸다. 경주 언니는 사양했지만 엄마는 돈을 억지로 쥐어주고 속이 더부룩하지 않다는 사람에게 마음 불편하게 밥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굳이 버티고 서 있다가 기어이 빈 잔을 받아갔다.

  다음날 아빠는 점심 먹으러 나온 경주 언니를 옆자리에 앉혀놓고 자신은 원래 자식에게 손찌검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날은 잠시 이성을 잃었을 뿐이니 잊어달라며 일장 연설을 했다. 경주 언니는 벌써 잊었다거나, 어머,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하고 너스레를 떨지 않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짧게 네, 하고 대답했다. 경주언니의 눈빛이 아빠의 난동을 조금 묶어둘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빠는 여러모로 심히 멋쩍은지 봉두난발을 손가락빗으로 빗어서 얌전한 2대 8 가르마를 만들었다. 외할머니의 명언록에는 ‘세상만사 처음이 어렵지 뭐든 자꾸 하면 쉽다.’도 있었지만, 뭐, 아빠가 늘 자식을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일단은 맞는 말이다. 맞은 건 처음이었다. 경주 언니 덕분에 이만하면 일이 잘 해결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경주 언니는 식사를 마치고 잘 먹었습니다, 조용히 인사하더니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상을 치우다 말고 한숨을 쉬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경주 언니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빠는 엄마에게 한숨 쉴 사람이 누군데, 니 지금 내 앞에서 데모하나! 하더니 안방으로 돌아갔다. 엄마랑 나만 부엌에 남자 엄마가 물었다.

  “어제 네 말은, 네가, 그러니까, 내 딸이, 사교육의 도움이 없이는 교과 과정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그런, 말이지?”

  아빠에 대항하느라 잠시 잊고 있던 현실이 얼굴에 냉수를 퍼부었다. 엄마네 팔 남매는 외할아버지의 선생 월급으로는 돈이 턱없이 모자라 유학을 못 가는 고로 모조리 서울대학으로 진학했고, 그중 세 명은 의대를, 엄마를 포함한 나머지 다섯 명은 사범대를 갔다. 엄마에게는 수업시간에 집중하고 집에 와서 교과서만 잘 읽으면 잘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시험 성적인데, 대체 성적이 왜 그 모양인지 이해가 안 되던 딸이 급기야 사교육을 주장하니 엄마 같은 사람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겠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늘 알고 있었다. 내가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식이라는 것을. 시간의 선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놈의 집구석을 조금이라도 더 벗어나있겠답시고 학원 이야기를 꺼냈다가 엄마 마음속의 내 실체만 새삼 보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멍청한지.

  “엄마는 공부 그렇게 잘해서 하숙집 주인아줌마 되니 좋아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울었다. 가슴이 불안하게 날뛰었다. 엄마는 앞치마를 내려놓더니 내 옆방의 일인실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등산화를 꺼내어 나왔다. 엄마가 아빠랑 각방을 쓰는지도 몰랐다.

  “엄마, 어디 가요?”

  “넌 어쩜 그렇게 네 아빠랑 똑같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멍청한 게 말까지 못 돼먹게 해서 엄마가 나가버렸다. 숨이 차올랐다. 나는 경주 언니의 문을 두드렸다. 경주 언니는 문을 열어주면서도 자꾸 고개를 돌려 얼굴이 보이지 않게 했다. 한 손에는 휴지가 들려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경주 언니.”

  경주 언니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언니가 휴지를 주었다. 언니는 누가 볼세라 나를 급히 방 안으로 잡아당기고는 문을 잠갔다. 우리는 한참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아 눈물을 뽑았다. 나도 나지만 언니는 왜 울고 있었는지, 설마 어제부터 우리 식구가 민폐를 끼쳐서 그런지 묻고 싶었는데, 눈물이 다 나오기 전에는 목소리가 나오려 하지를 않았다.

 

  원래 우리 집의 분위기는 지극히 평범해서 설명할 거리가 없을 정도였다. 출퇴근하는 아빠, 가정주부 엄마, 자기 방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오빠, 내 방에 있는 나. 아빠가 일찍 퇴근하는 날엔 “아빠, 잘 다녀오셨어요?” 한 마디. 아빠가 잠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텔레비전을 틀고 뉴스를 세 꼭지 정도 보고 나면 준비가 끝나는 저녁상. 편식하지 마라, 꼭꼭 씹어 먹어라, 따위의 틀에 박힌 잔소리 몇 마디. 아빠와 오빠가 식사를 마치고 몸만 쏙 일어나서 소파와 자기 방으로 돌아가면 식탁 정리를 하는 나와 설거지를 하는 엄마. “아빠, 잘 주무세요.” 한 마디. 설명하는 나조차 너무 지루해서 설명하기 싫은 평범한 생활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건 저 생활이 고작 몇 달 전 일이었다는 사실 정도?

  그날 늦은 밤, 대문에 쿵하는 소리가 났던 날 이후부터였다. 엄마는 문을 열러 나오지 않았고 집에 있는 줄도 몰랐던 오빠가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아빠가 구둣발로 그냥 집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재빠르게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고 “아빠, 잘 다녀오셨어요?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인사하고 바람같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아빠는 뿌리 뽑힌 고목처럼 언제고 쓰러져서 두 동강 날 것 같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먼저 들리고 아빠가 대답하는 말을 끊어버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쓸모없는 인간지만 그래도 오빠란 걸 가지고 있으니 오빠 방으로 가볼까 싶었다. 문을 열고 두 발짝 앞으로 나가 목을 빼고 내다보니 거기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주방 식탁 위의 핀 조명만 켜진 채 집 안의 모든 불은 꺼져있었다. 정수리부터 비추는 주방 조명 아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조금 숙인 엄마는 꼭 외할머니 같았다. 아빠는 한 손으로는 의자를 붙잡고 한 손으로는 마른세수를 하며 불분명한 발음으로 무어라 말했다. 의자를 잡은 손이 삐끗하는 순간 넘어질 것 같았다. 결국 베란다에 있는 천장 붙박이 건조대에 널린 청바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아빠가 주방과 마루 사이에 주저앉았다.

  “니 말이데이, 그래, 내가, 그랬다. 그랬다꼬! 그래도 그렇지! 언제까지 이칼라 카노!”

  “목소리 낮춰요.”

  뭘 그랬고 뭘 이랬는지 몰라도 엄마의 저 목소리만은 확실히 안다. 혼날 때 자주 듣는 목소리.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발바닥이 축축해졌다. 이러면 발을 뗄 때 장판에서 소리가 난다. 마음이 불안해서 양말 신는 걸 잊었다. 양말을 신으러 발바닥을 야금야금 떼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불렀다.

  “효재, 목마르니?”

  비몽사몽의 경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엄마가 목이 마르냐고 묻는 대신 거기서 뭐 하냐고 했더라면 나는 그 순간 무어라 둘러댔을지 모르겠다. 난 비틀거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너무 긴장돼서 진짜로 목이 타기도 했다. 엄마가 결명자 우린 물을 한 잔 따라주었다.

  “가지고 방에 들어가서 마셔.”

  엄마는 평소 내게 잔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내가 가지고 들어가게 내버려 두면 컵의 탑을 쌓을 거라고 했다. 엄마는 물은 마시고 잔을 바로 싱크대에 넣는 음료라고 했다.

  “엄마.”

  “어서 들어가.”

  “아니, 그게 아니고요.”

  바닥에 주저앉아 왼쪽 팔로 상체를 지탱하며 두 입술로 푸르르 푸르르 소리를 내던 아빠가 앉은 채로 소변을 보았다. 독일 출장 다녀오면서 샀다면서 평소 애지중지하던 겨자색 바지의 가랑이가 금세 젖어 들어갔다,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세우고 있던 관계로 왼쪽 바지통을 조금 적시며 발목으로 흘러나왔다. 터키에 출장 갔다가 엄마의 선물이라고 사 왔던 러그가 오줌에 점차 젖어갔다. 아빠는 그대로 드러누우며 에라이, 시바, 이혼하자, 고 중얼거린 것 같았다.

  다음날 엄마는 바지와 러그를 돌돌 말아 재활용 쓰레기 코너에 두고 왔다. 아빠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재활용 쓰레기 코너를 보고는 다운 파카도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바람을 뚫고 바지와 러그를 도로 가져왔다. 겨울이 어제의 증거물을 얼려두었던 것이다. 도서관에 간다던 오빠가 세탁소 심부름에 당첨되었지만 가다 말고 돌아와서 내 방 창문을(우리 집은 15층 아파트의 1층이었다) 톡톡 치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증거물을 내미는 손 앞에서 아빠가 오빠에게 시킨 일이라고 말하고 뒤돌아서다가 머리를 한 대 맞았다. 나는 단지 내 세탁소를 두고 굳이 2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성당 옆 세탁소에 맡기고 돌아왔다. 오, 오줌이가? 하는 세탁소 아저씨의 낯 뜨거워지는 질문도, 수백 개의 옷걸이들 사이에서 등판과 엉덩이만 보인 채 다림질을 하다가 ‘착하게 엄마 심부름 온 얼라 부끄럽구로 그런 소리는 와 하노?’ 하며 고개를 내밀었다가 내가 ‘얼라’가 아니라 당황한 아주머니의 표정도 온몸으로 받아냈다. 엄마는 아빠가 여러 나라로 출장 다니며 사 모은 물건들을 하나둘 씩 내다 버렸다. 경상도의 중견 무역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 지사를 만들어내다시피 한 아빠가 본사로 금의환향하며 초대 손님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둔 전리품들이 점점 길에 나앉았다. 엄마는 기간제 교사가 되어 다시 선생님이 되었고, 아빠는 점점 집에서 술을 마셨다. 에라이, 시바, 이혼하자, 가 후렴구로 자리 잡았다.

  얼굴에 똥 처발랐다꼬? 그거는 진짜 오해다, 하긴 니는 안 믿재? 에라이, 시바, 이혼하자. 당신 또 펄쩍 뛸 일 하나 내가 저질렀데이, 내 사기 당했다, 에라이, 시바, 이혼하자.

  엄마가 나는 알지 못하는 이유로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누가 다리 밑에서 성인용품 팔자 카데, 돈도 잘 벌린단다, 어떻노? 에라이, 시바, 이혼하자. 니 지금 내 비웃재? 에라이, 시바, 이혼하자. 옌장, 그래, 내는 사랑했다! 이래 말하면 좀 달라지나? 에라이, 시바, 이혼하자.

  엄마는 집을 내놓았다. 나는 중학교 입학 후에 우리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려는 애가 있으면 꼭 둘이 같이 혼내주자던 효정이와 이유도 모르고 작별했다.

  장사할라꼬? 꿈도 크데이. 그기 아무나 하는 건 줄 아나? 이기 다 내 탓이가? 니 탓은 진짜로 하나도 없는 거 같나? 에라이, 시바, 이혼하자.

  겨울이라는 열차의 마지막 칸에 간신히 탑승한 칼바람이 에라이, 시바, 하고 고삐 풀린 아빠처럼 발악을 해대며 떠났다. 2월이 지나가자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서 집을 본다며 들락거렸고 그게 끝나니 이삿짐센터 아줌마가 집을 헤집어보고(내방 옷장까지!) 갔다. 엄마는 이제 서울에 사는 거야, 라고 하셨다. 나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 입학했고 오빠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예상하던 일이라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아빠의 에라이, 시바, 시리즈도 점차 다양하게 진화(혹은 악화)되어갔는데, 그 또한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 경주언니를 잘 살려보라. 아빠는 생동감 넘치게 잘 그려졌다. 재치있었다. 아빠의 변화가 압축, 재치. 계속 써보라. 포맷은 좋다. (주인공+경주언니와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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