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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생, 기억하세요 -세 번째 편지-

by 꿈의 페달을 밟고 2022. 12. 1.

  전학생은 잠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자고, 체육 시간에도 나가지 않고 잤지요. 심지어 시험 시간에도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잠이 들었지요. 담임 선생님은 처음엔 전학생에게 관심을 보이시더니 시험 시간에도 자는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차시더니 답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전학생을 종종 교무실로 부르곤 하셨는데 시험 날 이후로 다시는 부르지 않으셨어요.

  그 뒤로 몇 주 뒤에 전학생은 자퇴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전학생은 조금 아파서 더는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허탈했지요. "조금 아픈" 전학생이 집에 찾아와 한 허황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었으니 저 자신이 조금 어처구니없는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전학생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자니 실망스러운 기분이 더 컸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들을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저의 무미건조한 삶이 조금이라도 재미있어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게다가 제 심리와 담배를 피우는 사실을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고 있었다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전학생이 집 앞에서 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전학생을 제가 담배를 피우는 이수역 출구 바로 뒤에 보이는 공터로 데리고 갔습니다. 싱글싱글 웃음도 나고, 담배도 그날따라 더 즐겁게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왜 자퇴했어?”

  “몰라.”

  “그게 말이 되냐?”

  “잠 때문이지. 이곳 세상의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

  “담임은 뭐래?”

  “대학병원에 가보래. 가서 이것저것 검사해보래. 내가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부모님은 지금 하는 생선가게를 접고 나 데리고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보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그러지 마시라고 뜯어말렸어. 그리고 그냥 좀 쉬고 싶다고 그랬지.”

  “그렇구나.”

  저는 말없이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차피 학교 같은 건 나랑 안 어울려. 검정고시 보면 돼.”

  “나름 착실하게 살 계획은 세웠네.”

  “그래야지. 여기가 내 세상 같으니까.”

  “왜?”

  “하도 많은 세상을 다니다 보니 내가 어디 사람이고 뭘 하는 사람일지 혼란이 왔는데, 다른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살고 나이도 들쭉날쭉하지만 여기서 나는 일관되게 여고생이고, 이곳에 올 때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부모님이 있잖아. 그 생각을 하니 나도 만년 떠돌이로 만은 느껴지지 않더라고. 닻을 내린 곳을 찾았달까? 어딜 다녀오든 이곳이 내가 있는 곳이라는 확신 비슷한 게 느껴져.”

  “잘됐네.”

  “그래서 내가 널 살리려고.”

  “뭔 소리야.”

  “네가 살기 싫다는 생각을 그만두고 의욕적으로 살게 만들어볼 생각이야.”

  “내가 네 인형이냐? 날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건 엄마만으로도 족해. 난 그만 살고 싶을 때 내 삶을 중지할 수 있는 자유를 손에 쥐고 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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