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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꽃

by 꿈의 페달을 밟고 2023. 4. 17.

  집에서 사람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풀냄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희귀 식물을 모았는데, 희귀하다고만 하면 종류를 마다하지 않고 구해왔기 때문에 베란다는 식물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한겨울에도 베란다에는 총천연색 꽃이 마구잡이로 피어나 눈을 어지럽혔다. 오빠 또한 결코 어머니와 아버지에 뒤지지 않았다. 오빠는 도대체 어디서 구해오는지 알 수도 없을 이끼류의 식물을 키웠다. 틈만 나면 분무기를 뿌리는 바람에 베란다 안의 공기는 언제나 축축했다. 오빠의 이끼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꽃들만큼이나 어지럽게 퍼져있었기에 베란다의 유리창과 벽, 마루로 통하는 유리문까지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수족관처럼 초록색으로 얼룩덜룩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뒀을 즈음,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집으로 들어가는 복도에서부터 왁자지껄한 소리가 새어 나왔고 대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신발들이 현관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옆집인 102호 아줌마가 짜증스럽게 문을 열고 고개만 쏙 빼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꾸벅 인사를 했다. 자주 보는 풍경이었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도 되냐고 재차 물어보는 친구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은 마루에 상을 깔고 앉아있었고, 어머니가 국자를 든 채로 주방에서 나왔다가 별 반응 없이 다시 들어갔다. 우리 둘은 함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다녀왔다는 말만큼이나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해왔던지라 어색할 건 없었다. 아버지의 어린 상사 일행이 와 있었다. 어린 상사는 아버지에게는 조카뻘인 나이였는데, 언제나 웃기 전에 약간의 콧방귀를 뀌는 사람이었다. 그는 눈앞에서 귀찮게 구는 날벌레들을 손으로 쫓으며 나의 인사를 받았다. 친구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갈 때 아버지가 우리 집은 방마다 화분이 가득 들어찼고, 화분을 수시로 보살피기 위해 네 식구 모두 이십사 시간 문을 열어놓고 산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어른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아버지의 상사는 고개를 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어지는 아버지의 자랑으로 다시 관심이 돌아갈 때에도 그는 나를 바라봤다. 분명, 너도 참 안 됐다,라고 말하는 눈이었다.

  “밀림이구만 밀림. 날벌레까지 자유롭게 날아다니네. 이끼랑 곰팡이 키우느라 가스비를 내고 나면 월급 다 쓰시는 거 아니에요? 야근비도 안 나오는 회사 그만두고 그냥 꽃집을 해요. 아 맞다, 과장님은 상관없구나. 야근을 절대로 안 하니까. 그죠.”

  어떤 사람은 어린 상사보다 더 통쾌하게 웃었고, 어떤 사람은 민망해하며 억지로 웃었다. 함께한 어머니의 웃음만큼이나 억지스러울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는 속없이 따라 웃더니 괜히 옆에 있는 식물의 이파리를 닦았다. 친구는 불편한지 가만히 앉아 손톱만 만지작거리더니 내가 준 음료수를 단번에 들이켜고는 집에 가야 할 것 같다며 일어섰다.

  “그래도 과장님 가족은 볼 때마다 화목해 보여서 참 좋아요.”

  마루에서 집에 몇 번 오지 않은 신입사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다보니 어머니가 부엌 앞에서 미소 지으며 오빠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화목한 가정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만족스러워했다. 사실 그게 목적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화목함을 뽐내고 싶어 했다.

  나는 친구에게 잘 가라고 하는 대신 그냥 같이 나왔다.

  “어디 가니?”

  어머니가 내 뒤통수에다 대고 칼칼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보다 하고 싶던 말은 안녕히 계세요, 였다.

 

  겨울의 베란다 창문은 금이 난 채로 눈 결정으로 짜인 레이스를 걸치고 있다. 수명을 넘긴 난로가 노역에 시달리고 있었고, 흐드러지게 핀 꽃들은 호사스럽게 그 온기를 누리고 있다. 식구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문법에 따라 움직였다. 금요일 저녁 식사는 무조건 집에서 했으며, 식후에는 마루에 둘러앉아 후식으로 과일을 먹었다. 집안 분위기는 무거웠다. 어머니가 접시 위로 포크를 내려놓는 소리가 내 주의를 끌었다. 지방 대학으로 진학하겠다는 나의 발언 이후로 가족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묻는 얼굴이었다. 서울에 있는 학교도 합격했는데, 기어이 지방 대학으로 가겠니? 세 사람의 얼굴에는 똑같은 표정이 깔려있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익숙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풍경이다.

  “꿈이에요.”

  이 집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었다.

  물론, 나도 식구들처럼 베란다에 속하길 기대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사랑을 담아 바라보는 곳이었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베란다에 있기만 하면 같은 시선을 받을 줄 알았다. 알았다기보다, 그러길 기대했다는 게 맞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잠자리나 풍뎅이, 비온 후 담벼락에서 종종 발견되는 달팽이 따위의 꼬물꼬물 움직이는, 식물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기대를 품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때, 하루는 베란다의 빽빽한 녹색 잎 사이로 병아리 두 마리를 풀어놓았다. 두 병아리의 다리에 각각 검은 리본과 빨간 리본을 묶어줬다. 어머니가 일터에서 돌아오면 함께 그 병아리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저보다 키가 큰 화분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마다 병아리의 앙증맞은 정수리가 사라졌다 등장하기를 반복했다. 병아리들은 납작한 화분의 잡초도 쪼아 먹으며 베란다 안에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병아리를 의기양양하게 공개했을 때, 어머니는 내 머리를 때리고선 호들갑스럽게 베란다에서 병아리를 꺼냈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에 물이 차올랐다. 어머니는 상자를 찾아 병아리를 넣고 화장실로 가며 온 집안에 짜증을 뿌려댔다. 나는 어머니가 손을 씻는 소리를 들으며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시끄럽게 굴었다가 어머니의 화를 더 키워 병아리가 당장이라도 쫓겨나는 사달이 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박스테이프로 상자를 봉했다. 나는 당장 공구함에서 송곳을 꺼내 병아리를 버리려고 문간으로 향하는 어머니를 따라갔다. 아버지가 나를 꽉 붙잡고 송곳을 빼앗았다. 단단한 나뭇가지에 몸이 묵인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보며 어머니가 화를 낸 이유나 나의 잘못을 아버지 설명 그대로 읊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품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설명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병아리가 먹은 게 잡초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송곳을 쥔 나를 보고 창백해졌지만, 나는 그저 상자 속의 병아리들이 숨이라도 잘 쉴 수 있게 구멍을 뚫어주고 싶을 뿐이었다.

  며칠 뒤 집 주변 길 가에서 병아리들을 발견했다. 누리끼리 한 껌딱지가 되어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한참을 울다 집으로 갔다. 집에 오니 역시나 풀냄새가 났다. 터진 병아리 머리처럼 슬픈 냄새. 깡마른 어머니에게서 늘 나는 냄새. 그날 이후로 나는 어머니 가까이도, 베란다 가까이도 가지 않았다.

  “너 시집가기 전까지 우리 식구가 같이 살면 얼마나 살겠니. 같이 새우란도 키우면서 지방으로는 출사나 가자. 자주 가면 되잖아. 아빠가 너한테 사진도 배우고, 얼마나 좋아. 학교는 집에서 다녀라.”

  아버지가 말을 마친 후로도 나는 한참을 입을 다문 채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놓은 화분처럼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아버지는 나를 항상 화목이라는 가치관을 심어줘야 할 존재로 여겨졌다.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지친다는 듯 베란다를 내다봤다. 아버지가 노란 꽃이 핀 새우란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아버지는 끈질긴 사람이었다. 퇴근하던 아버지가 병아리 옆에서 울고 있던 나를 발견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어머니는 내가 송곳을 든 그날 이후로 확연하게 거리를 뒀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적극적으로 나에 대한 논의를 한 것은 심리 상담까지였다. 상담 비용이 두 사람의 예상을 웃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어머니도 상담을 고려했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과 수다 떠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직접 나를 ‘치유’하기로 했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시야 안에 머물러야 했다. 마루에 뿌리를 내린 식물에 내 발목이 감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변하는 내 모습에서 새싹이 나는 순간의 희열,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성과를 찾고 싶어 했다. 나에게 지속적으로 씨를 뿌리게 하고 떡잎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버지에게는 경이로움이었던 것이 내게는 집요함이었을 뿐이다. 씨를 뿌리지도 않은 곳에서 나는 이름 모를 풀들을 볼 때면 더더욱 그랬다. 사방이 틀어 막힌 이 베란다에서 얼마나 대단히 좋은 꼴을 보려고 저렇게 고개를 쳐드는지 이해도 못했고, 싹이 나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게 노란색 꽃이 핀 식물들을 ‘선물’하기 시작했다. 병아리처럼 노란 꽃들을 보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모든 노란 꽃들을 병아리 꽃이라고 부르기 시작하고는, 노란 꽃이 피는 각종 식물을 구해와 정성껏 키웠다. 카메라도 선물하며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해 보라고 했다.

  “싫어요. 이 집에서 나갈 거예요.”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른 즐거움이었지만, 나는 사진을 찍는 일이 즐거웠다. 무엇을 하러 나가는지 밝혀야만 했던 내게 카메라는 언제든 나갔다 올 수 있는 티켓이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새벽에 집을 나와 시골행 버스를 탔을 때, 자유가 급작스럽게 몸속에 들어차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행선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탈 수 있는 버스를 타고 떠났고 내려서는 무작정 걸었다. 앞뒤가 뻥 뚫린 한적한 길이 좋았다. 길 가에는 ‘무화과 농장 구경 오세요!’라고 직접 쓴 팻말이 서 있었다. 시골길을 얼마 들어가지 않아 뜨거운 여름 열기를 타고 무화과 향기가 풍겼다. 한 할머니가 무화과를 든 소쿠리를 들고 낡은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나에게 할머니는 길 가는 강아지에게 간식 하나 던져주듯 무화과 한 알을 건넸다. 그냥 입으로 베어 먹을걸 괜히 손으로 찢어 먹었다. 손이 끈적끈적해졌다. 할머니가 무심하게 등을 돌리더니 손가락질을 했다. 가보니, 화장실이었다. 손을 씻고 나오자 할머니가 씩 웃었다. 그리고는 내게 별 건 없지만 밥을 먹고 가겠냐고 물었다.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가 아침에 먹다 남은 강된장에 밥을 비벼 쌈을 싸 먹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무화과 꼭지, 할머니의 빨래, 호미, 걸레, 낡은 자전거 바퀴, 얼굴, 평상, 강아지의 발. 그날 밤부터 사흘을 할머니의 집에서 묵었다. 할머니가 학교에 가라고 등을 떠밀지 않았으면 더 있을 작정이었다.

  화요일에 집에 돌아와서는 어머니에게 뺨을 맞았다. 오빠는 경찰서에 전화해 나를 찾았다고 했고, 아버지는 밑도 끝도 없이 나를 믿는다는 말을 반복하며 마치 진료 중인 의사처럼 나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더니 결국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산부인과로 끌려가야만 했다. 아버지와 나에게 쏠리는 눈길을 몸에서 다 털어내지도 못한 채로 서둘러 집에 와서는 아버지에게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할머니의 얼굴이 나왔다. 아버지는 이 할머니가 누구인지 물어봤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혼자 사는 할머니라는 것 이외에 자세히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대답하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본인의 장기를 살려 끈질기게 질문을 던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거의 모든 주말에 몰래 집을 나섰다. 처음과 달라진 게 있다면, 짐을 쌌다는 점이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배낭에 든 것은 할머니를 위한 양말, 스카프, 로션 따위의 것들이었다. 양말을 내밀었을 때, 할머니는 신고 있던 양말을 그 자리에서 벗고 내게 받은 양말로 갈아 신었다. 할머니가 방바닥에 앉아있던 그대로 발을 위로 들어 올려 포즈를 취했다. 나는 사진을 찍었다. 기뻤다. 할머니는 내가 빈손으로 가도 반겨주었고, 잔뜩 싸들고 가도 반겨주었다. 내가 평상에서 잠이 들면 들었나보다, 깨서 사진을 찍으면 찍나 보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나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존재만으로도 기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왠지 모르게 뱃속에서부터 따스함이 퍼졌다. 그 순간들이 내 사진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 순간 동안만은 병아리도, 집도 떠오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가 두 가지 약속을 하길 바랐다. 일요일엔 집으로 갈 것. 할머니의 주소를 부모에게 알려줄 것. 나는 할머니의 주소를 아버지에게 넘기진 않았지만, 일요일마다 집에 꼬박꼬박 돌아왔다.

  집은 이미 노란 꽃 천지였다.

  창가, 침대 협탁, 책상 스탠드 옆, 화분을 놓을 수 있는 틈만 나면 노란 꽃이 피는 식물이 들어섰다. 아버지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들렀을 때도 바로 안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 방으로 와 소리 죽여 노란 꽃들이 잘 피어있는지 확인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쯤, 집 안 화분들의 반 이상을 노란 꽃이 피는 식물이 차지했다. 아버지는 식구들이 모두 수시로 보살펴야 하니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놓고 살자고 했고, 어머니와 오빠는 아버지의 말이라면 전혀 토를 달지 않았다.

  처음 노란 꽃이 피어났을 때,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꽃이 필 자리에 터진 병아리 머리가 피어나 나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꽃은 눈을 깜빡이는 걸로 그치지 않았다. 나중에는 부리를 벌리며 먹이를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바람이 불 때는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옆 가지로 옮겨가려고 하기도 했다. 병아리의 머리뿐만 아니라 찢긴 날개가 피어나 혼자 퍼덕거리기도 했고, 리본이 묶인 부러진 다리가 피어나 버둥거리기도 했다. 가끔 꿈틀거리는 벌레가 가지에 걸려있어서 보면 병아리 내장이 피어나있기도 했다. 꽃이 자꾸 피어나 움직이는 통에 이파리가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밤마다 그렇게 집 안에서 스산한 바람이 일었다.

  “너 정말 이럴래? 너 때문에 아버지 서운하시게 왜 이래.”

  시집가기 전까지 같이 살자는 말에 목구멍에 흙이 들어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겨우 숨을 고르는데 오빠가 끼어들었다. 오빠는 자기가 키우는 이끼류 식물만큼이나 늘 ‘너 때문에’라는 말과 함께 조금의 틈도 놓치지 않았다.

  노란 꽃이 집에 퍼지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푸드덕거리며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는 문을 열고 사는 일상도, 노란 꽃으로 도배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오빠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앞에서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모두가 나 때문인지 알고 있는데, 기어코 ‘너 때문에’ 아버지가 서운해하시고, ‘너 때문에’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오빠는 친절한 얼굴을 하고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균열은 함께하는 가족활동이나 집안 방침에 동의하지 않는 나 때문이라고 나를 탓했다. 문을 열어놓고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결국 새벽에 화분을 내놓으려 일어났다. 병아리들이 어찌나 버둥거리던지 노란 깃털이 내 머리맡에서 날렸다. 맨발로 걸어 다닐 때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양말을 신고 화분을 내놓는데 오빠가 내 앞에 와 서 있었다. 침대에서 뒤척거리는 소리가 한참 나서 와 봤다고 했다. 오빠는 내 등을 토닥거리고서는 내놓은 화분들을 원위치시켰다.. 너 때문에 하는 일이잖아.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니.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되는 걸.

  화분을 몰래 내놓으면, 다시 방 안으로 조용히 들여놓았다.. 이 집에서는 언성을 높이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나 오빠의 말투는 마치 바람결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처럼 부드러웠다. 나의 비명이나 호소도 모두 그들의 부드러운 가지에 엉켜버렸다. 눈물이 울컥거리며 터져 나왔지만,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기만 했을 뿐 어느 누구의 귀로도 흘러들어 가지 못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식물들은 나의 침묵과 어머니의 히스테리를 비료 삼아 잘도 자라났고, 집에 놀러 오는 손님들은 이젠 집 안에 울창한 숲이 생겼다고 했다.

  “현재야.”

  되바라진 년.

  어머니는 내게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의 진심은 직접 듣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점점 늘어나던 이모와의 통화를 몇 번만 엿듣고 나면 어머니의 닫힌 입 안에서 어떤 말이 맴도는지 알 수 있었다. 닫힌 입 안의 수많은 말들은 알아서 추측해야 했지만, 어렵지 않았다. 나를 설명할 생각이 사라졌다. 나 또한 신물 난다거나, 제발 좀 그만 하라거나, 죽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침묵으로 대체했다. 뜻은 알아서 추측하길 바랐지만, 보아하니 어머니에게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모가 집에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이모의 식구들이 다 함께 오기 시작했다. 언제나 손님들을 불러 모으는 아버지에겐 이 또한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다가도 사람들이 늦게까지 머물면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람들이 떠난 뒤 조용해진 집 안에서는 이따금씩 어머니가 이불속에서 신경질적으로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어머니에게 가장 확실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오빠와 식물이었다. 빛과 물을 주면 잘 자라는 식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어머니를 챙겨주는 오빠. 어린이를 돌보는 일을 했던 어머니는 집에 오면 시끄럽고 말도 안 듣는 아이들에게서 겨우 벗어났다며 한참을 베란다 앞에 앉아있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나를 보호하는 건 침묵이었다. 할머니의 집이 그리웠다. 할머니가 나에게 고등학생 때는 오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생이 되어 보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나는 계속 갔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미리 영정사진을 찍어두고 싶다고 했다. 사진을 찍을 때 할머니는 참 밝게도 웃었다. 마을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현상하고 뒷면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뒀다. 무슨 일 있으면 내게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할머니에게서 전화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할머니와 나 사이의 단절은 견디기 힘들었다.

  집과 독서실과 학원을 오가는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병아리들은 밤낮없이 버둥대고, 집도 덩달아 흔들렸다. 이파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마치 귀 바로 옆에서 콩을 집어넣은 빈 페트병을 흔드는 것 같았다. 다급한 마음에 손을 뻗었을 때, 손끝에 차갑고 축축한 털이 만져졌다. 꽉 붙잡아 움직임을 멈추게 하려고 했는데, 손은 병아리를 쓰다듬었다. 병아리의 눈과 내 눈이 만나고 바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럴 때면 이 때를 틈타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대책도 없이 나가면, 살 곳은 있니.”

  어머니가 히스테리가 잔뜩 묻은 말을 툭 뱉었다.

  “있어요.”

  어디로든 갈 작정이었다.

  “그 할머니 집?”

  오빠가 끼어들었다. 나는 눈썹을 치켜떴다.

  “전남에 그 무화과 할머니.”

  오빠의 입에서 할머니가 사는 지역 이름이 나온 것이 심하게 불쾌했다.

  “네가 가는 곳을 몰라서 가만히 계신 게 아니야. 너 때문에 그 먼 데를 몇 번씩이나 다녀오셨어.”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거길 왜 가셨어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잘 계세요?”

  “다 너 좋으라고 한 거야.”

  아버지가 근엄하게 말했다.

  “잘 계시냐고요.”

  “너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 가라고 그러신 거야. 할머니도 거기에 동의 하셨던 거고. 그 결과 너도 시험 잘 봤고. 철없이 굴지 말고 여기서 학교 다녀라. 마지막으로 갔을 때 조금 편찮으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숨이 막혔다. 아버지 앞에 놓여있는 노란 새우란에서 병아리가 몸부림을 쳤다. 송곳. 대체 송곳으로 어딜 뚫어야 숨구멍이 트일까. 어지러웠다. 당장 짐을 싸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나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베란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화분이 쓰러지는 소리였다. 닭이 가볍게 뛰어올라 식물들을 걷어차니 발아래로 깨진 화분 조각과 식물들이 널브러졌다. 닭은 뛰어오를 때마다 부리가 천장에 닿아 거치적거린다는 듯 콧김을 뿜었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화분을 꾸미려고 깔아놓은 백자갈이 타일 바닥에 긁히면서 자글자글 소리를 냈다. 짧고 굵은 벼슬 아래 까마귀 같은 얼굴에는 사람의 것처럼 생긴 눈이 달려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실컷 운 듯 충혈된 붉은 눈자위 안으로 노란 눈동자가 번뜩였다는 것 정도였다. 닭의 눈이 재빠르게 집 안을 훑으며 마루로 걸어 들어왔다. 고집스러운 부리 아래로 이어진 굵고 곧은 목은 마치 격투기 선수를 연상하게 했다. 목의 털은 보드라워 보였지만 검붉은 색을 하고 전쟁 속 피에 젖은 깃발처럼 위엄 있게 북실거렸다.

  닭이 소리를 질렀다. 운다는 표현은 저 닭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나무 기둥처럼 굵은 다리는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철근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강인한 발로 이어졌다. 발톱은 위협적으로 휜 후크 같았다. 닭이 위협하며 날갯짓을 하며 뛰어올라 오빠의 얼굴을 차니 턱이 떨어져 나갔다.. 어머니는 뾰족한 발톱 끝에 여전히 찍혀있는 오빠의 아래턱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가 달려들어 오빠의 턱을 빼내려 했지만 뒷목을 쪼였을 뿐이다. 살점이 뜯어져서 푹 파인 뒷목을 잡고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닭이 뛰어올라 아버지의 배를 긁어놓았다. 깊게 파인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닭은 멈추지 않고 아버지의 배를 계속 물고 뜯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 때마다 아버지의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졌다. 꽃들은 초토화되었는데도 여전히 버둥거릴 때의 소리가 났다. 그 어느 때보다 큰 소리였다. 나는 더 이상 그 소리가 괴롭지 않았다. 달빛을 배경으로 닭이 괴성을 내지르며 날뛰었다. 청록색 빛을 발하며 흔들리는 깃털이 마치 끝이 휜 아랍의 검을 연상시켰다. 어머니는 허둥지둥 오빠의 턱을 막다가 아버지의 배를 막다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었다. 발톱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찢어지고 속을 드러냈다. 나는 방으로 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등 뒤로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힐끗 돌아보니 닭은 천천히 어머니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정말이지, 시끄러웠다.

  짐을 다 싸고 지금껏 현상해두었던 사진들까지 모두 챙기자 집 안에 정적이 깔렸다. 수년간 나를 괴롭히던 바람소리도 멈췄다.

  나는 집을 나섰다.

 

 

- 지난번보다 매끄럽게, 쉽게 잘 읽힌다는 생각입니다. 사건들을 추가한 것이 좋은 효과를 발휘한 듯합니다. 병아리가 꽃처럼 핀다든지, 거대한 닭이 나타나 공격한다든지 하는 장면들도 지난번보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억지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으니 천천히 시간을 두고 퇴고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구성이 좀 아쉽다는 느낌. 에피소드들이 단편적으로 소개되면서 집을 나가는 장면 사이에 끼어들고 있는데 이 구성이 조화롭지 않다는 느낌. 하나의 단편이라기보다는 옴니버스 같은, 일기 같은 느낌. 아예 새롭게 구성을 짜보는 것이? 표현은 여전히 좋음. 마지막의 닭은 아직도 급작스러운 느낌. 분량을 더 늘려서 그 부분 묘사에 힘을 주면?

- 닭이 급작스럽게 등장(연결고리가 적기 때문임), 연결을 더 쌓을것, 성숙하지 않은 중고딩이 투덜거리는 느낌, 사건의 구체화가 중요, 화자와 가족의 관계가 납득이 안감, 할머니와의 관계도 뜬금없음, 화자의 반발감이 과도함, 이야기의 응집력이 떨어짐, 닭을 더 송곳으로 느껴지게 퇴고해볼것

- 필요한것: 문학적 진술, 사유(독서), 관념과 현실 사이를 잘 이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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