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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블록 1 - 엉망이었던 입사 면접에 대해 이야기 해볼 것.

by 꿈의 페달을 밟고 2022. 8. 11.

  "토익 점수가 아주 높으시네요."
  "감사합니다." (너무 겸손했나? 늘 그 정도는 나온다고 자신 있게 말했어야 했나?)
  "그런데 집이 좀 머시네요."
  "되면 출퇴근이야 해야죠." (야! 그 모양으로 대답하면 어떡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합격만 시켜주시면 열심히 다니겠다거나, 아니면 직주근접을 지향하기에 가까이 이사를 오겠다고 했어야지. 너 이런 식으로 굴면 떨어져.)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떨어졌다.
   어차피 그 회사가 있는 강남으로 이사 갈 돈 같은 건 없었다. 거긴 반지하도 비싼 동네겠지. 하지만 그녀는 두더지처럼, 토끼처럼 땅 속에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만큼 살아보니 견딜 수 없다는 결론이 들었다. (지금 세 번째로 반지하에 세들어 살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는 옥탑을 선호했다. 2년 단위로 반지하방 투어 비슷하게 살아가다가 중간에 한 번 옥탑으로 들어가 살아보았다. 직사광선을 좀 받고 싶었다. 초반엔 신이 나있었다. 햇살 좋다고 소리 높여 하늘에다 대고 외칠 지경이었다. 짜장면 배달을 시켜먹고 그 배달원이 빈손으로 자꾸 그녀의 창밖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보여서 식은땀을 흘리기 전까지.
   그녀는 말없이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전화기를 꺼내 본론만 짧게 말하고 얼른 끊었다. 전화비를 아껴야 한다. 이번 달도 돈을 못 보내드린다고,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말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짧은 통화로는 차마 다 할 수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가 지금 바라는 건 오직 딸의 취직뿐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쓰러지고 어떻게 병원까지 갔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기억나는 건 엄마 목소리의 떨림이었다. 달달 떨리는 그 목소리, 하지만 어떻게든 침착하려고 애쓰는 그 목소리. 엄마는 그 이후로 말수가 확연히 줄었다. 원래부터 말수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저 필요할 때만 말하고 지낸다. 그 침묵을 다 걱정이 채우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그녀도 이제는 어린 시절 읊어대던 자기의 꿈을 말하지 않는다. 그녀도 어느덧 말없이 엄마의 침묵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그저 그 회사가 제시한 연봉이 좋았다. 월급을 받으려면 취직을 해야 했기에 지원한 것뿐이었지만, 면접을 망치고서부터는 그 돈이 탐이 나 영어 문제집을 만들며 사는 삶까지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그 일자리를 놓친 것이 새삼스럽게 아쉬워졌다. 그녀는 엄마의 침묵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몸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간 이러다가 하나의 마침표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또 뒤져야 한다. 내가 다닐만한 회사는 어디일까, 월급 받아서 집에 돈 보내고 내가 쓸 만큼의 액수가 나올까, 생각하며. 문창과이던 그녀가 복수전공으로 영문과를 선택하고, 교양 과목으로 독문과 수업을 택할 때, 동기들이 패기 넘친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던 이유가 다 있었다. 그녀는 그 비웃음의 엄지들을 보고 그냥 담배만 피워 물었을 뿐, 동기들이 듣는 실용적인 과 수업에 같이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월급을 탐내려면, 동기들의 흐름 속에 풍덩 뛰어들었어야 했다.
   그녀는 직진만 하는 여자였다. 관심 있는 것을 향한 직진. 그녀의 부모도 그런 성격을 알았기에 부전공을 선택할 때도 입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집안은 소위들 말하는 중요한 일 앞에서 오히려 입을 닫았다. 미리 손을 놓는 것이다. 언성 높여가며 이야기해봤자 (이야기를 시작하면 늘 언성이 높아졌다) 아무 소용도 없는 고집불통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엄마는 그녀가 시야를 넓여야 한다고 자주 말했었다. 그래도 문창과에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그녀의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이제 그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삶이 던지는 것은 커브볼이라는 것을 몰랐던 직진 인간.
   그녀는 이제와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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