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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중에서

by 꿈의 페달을 밟고 2023. 2. 10.

▒ 초고를 작성할 때, 내가 음식물쓰레기통에서 넘쳐흐른 거만 같은 문장을 써내려가는 까닭은 거기에 내가 묘사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쓴다는 게 고작 "그녀는 질투심이 강한 여자였다. 자존심도 센 여자였다" 같은 문장들이다. 이건 소설의 문장이 아니라 시놉시스의 문장이다. 투자자들 앞에서 PPT로 스토리를 보여줄 때나 필요할까, 소설책에서는 판권란에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종류의, 뭔가 시큼한 냄새에다가 걸쭉한 액즙, 그리고 흐물흐물한 건더기 같은, 이 꼴로 봐서는 곧장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게 상책인 문장이다. 초고에는 이런 문장들이 가득하다. 경험상 말하자면, 적어도 일주일은 이런 문장들을 쏟아내야만 소설의 문장을 얻을 수 있다. pp34~35

 

▒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내가 찾아내려고 하는 건 디테일이다. 우리말로는 세부 묘사라고 하는데, 소설에서는 세부 정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녀는 질투심이 강한 여자였다"라는 관념에 세부 정보라는 빛을 쪼이면 소설의 문장이 나온다. 질투심이 강한 여자의 눈빛은 어떻게 생겼는가? 질투심이 강한 여자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질투심이 강한 여자는 언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가? 소설의 문장이라는 건 이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p35

 

▒ 어떤 입양아가 자신의 출생과정에 대해서 알아내려고 고향을 방문했다가 수많은 비밀을 접하게 (되면서 생고생을 하게) 된다. 이건 내가 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한 문장으로 만든 것이다. 이 정도 문장이면 장편소설을 쓸 수 있다. 늘 자기 앞에 두 개의 상자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면. 하나는 '왜?'라는 의문사가 가득 든 상자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라는 의문사가 가득 든 상자다. 틈날 때마다 그 상자에서 번갈아 '왜?'와 '어떻게?'를 꺼내서 앞의 문장에 갖다붙여서 질문을 만든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왜 한 입양아는 자신의 출생과정에 대해 알아내려고 하는가?'

  '어느 날, 양부가 보낸 소포 중에 친모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왔기 때문이다'가 나의 대답이다. 대답이 나오면 또 상자에서 '왜?'를 꺼내서 거기에다가 붙인다.

  '왜 어느 날, 양부는 소포를 보냈는가?' 혹은 '왜 친모와 사진을 찍었는가?'

  '어떻게?'를 꺼내서 붙여도 된다.

  '어떻게 어느 날, 양부는 소포를 보냈는가?'

  이 질문에는 '이십 킬로그램짜리 페덱스 상자 여섯 개에 담에서 보냈다'가 나의 대답이다. 여기에는 다시 '왜?'를 붙일 수 있다.

  '왜 양부는 이십 킬로그램짜리 페덱스 상자 여섯 개를 입양아에게 보냈는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의 구석구석을 모두 알아낼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물론 이 모든 질문들에 독창적으로 대답하는 일은 독창적인 소설을 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질문은 독창적일 필요가 없다. 그저 상자 두 개를 상상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양손을 이 상자 두 개에 넣고 '왜?'와 '어떻게?'가 쓰여진 카드를 꺼내기만 하면 우리는 소설 창작의 절반을 한 셈이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왜?'라는 의문사로 알아낸 대답들은 모두 백스토리가 된다. 이 백스토리는 등장인물의 성격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떻게?'라는 의문사로 알아낸 대답들은 모두 디테일이 된다. 이 디테일은 플롯을 진행시킨다. pp59~60

 

▒ 주인공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이야기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는 다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매력이란 그가 자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껴안는 행동을 할 때(그간의 우리 용어로 치자면, 생고생할 때), 그걸 지켜보는 사람(작가나 독자)의 내부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공감의 감정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이 공감의 감정 없이는 작가는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어렵고, 독자는 한 페이지를 읽기 어렵다. 형편없는 인간이 나와서 주인공이랍시고 멍청한 소리를 늘어놓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든 건 그걸 읽는 일이다.

  주인공은 그가 누구든 매력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처음에는 형편없고 멍청하더라도 그가 주인공인 한,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매력적인 인물로 바뀐다. 왜냐하면 소설의 플롯은 대개 지금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서 생고생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생고생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수고를 무릅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생고생의 길로 나설 때, 우리는 그 인물에게 매력을 느낀다. p69

 

▒  하지만 단순한 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 더해서 주인공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다른 등장인물들보다 더 구체적으로, 더 많이 보여줘야만 한다. 다른 등장인물이 "나는 사과를 좋아해"라고 말할 때, 주인공이라면 "난 8월 초순의 아오리를 좋아해"라고 말해야 한다. p70

 

▒  소설가로 산다는 건 여러 번 고칠수록 문장이 좋아진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플롯과 캐릭터 같은 건 처음부터 직관적으로 멋진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해도 문장만은 제일 먼저 쓴 문장이 제일 안 좋다. 그래서 소설가에게 필욯ㄴ 동사는 세 가지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 소설가는 제일 먼저 '쓴다'. 그다음에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쓴다'. 소설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소설쓰기라는 동사가 있다면, 그런 뜻이어야만 한다. pp74~75

 

▒ 빈도수 염력사전 같은 게 있다고 치자. 이 상상의 사전에는 표제어가 빈도순으로 배치된다. 말하자면(이라고 쓰고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신문과 잡지와 책, 그리고 우리의 대화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와 표현은 앞쪽에 있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와 표현은 뒤쪽에 있다. 이 사전의 페이지는 손이 아니라 생각의 힘으로만 넘길 수 있다. 그러니까 갈피를 넘겨서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보려면 더 많은 생각의 힘, 그러니까 염력이 필요하다. 초인적인 염력을 발휘해 남들보다 훨씬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그의 문장은 훨씬 좋을 것이다. pp75~76

 

▒ 다 알고 있다시피 작가는 거짓말을 진실처럼 들리게 말하는 사람이다. 이때 '진실처럼'이 들어가는 자리에 '핍진성 있게'라는 말을 넣으면 된다. 소설과 비소설의 차이는 이 핍진성에 있다. 비소설에서 진실이란 실제로 벌어진 일을 뜻하지만, 소설에서 진실이란 반박할 부분이 한 곳도 없는 완벽한 이야기를 뜻한다. 물론 소설을 써보면 알겠지만, 반박할 부분이 한 곳도 없는 이야기를 쓰고 나면 실제로 그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거나 나중에 벌어지는 걸 확인할 때가 있다. ··· 핍진성 있게 쓴다는 말이 워낙 그런 뜻이기 때문이다. p81

 

▒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을 요약해보자. 맨 처음은 할리우드의 이야기 공식. 그다음은 소설가 앞에 놓인 두 개의 상자, '왜?'와 '어떻게?' 세번째는 빈도수 염력사전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은 인과의 사슬 만들기다. 소설에서 모든 문장은 사슬의 형태로 이어진다. 입양아가 자신의 친모를 찾아가려다 생고생을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제일 먼저 '왜?'와 '어떻게?'를 꺼내서 붙인다. 왜 입양아는 자신의 친모를 찾아가려고 하는가? 빈도수 염력사전으로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양모 앤이 유방암으로 죽었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얻어냈다.

  이제는 이 유방암이라는 단어를 축으로 해서 인과의 사슬을 만든다. 제일 먼저, 우리가 아는 두 가지 정보인 입양과 유방암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상식적으로 앤은 입양을 실행하는 사람과 유방암에 걸리기 쉬운 사람에 공통적으로 속하는 어떤 사람일 것이다. 이제 앤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때는 단순히 구체적인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단어와 표현 중 입양을 실행하는 동시에 유방암에 걸리기 쉬운 사람에 해당하는 것만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핍진성은 확보된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소설가는 모든 질문에 구체적으로, 그리고 핍진성 있게 대답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 핍진성은 소설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토대다. 소설가는 구체적인 문장을 넘어서 핍진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까지가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에 푹 빠진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그게 다 핍진한 문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고 플롯을 짜는가가 모두 이 핍진성에 기초한다. pp82~84

 

▒ 이상의 삶은 그가 도쿄에서 죽은 뒤로 완전히 다시 쓰여졌다. 이상에게 결정적 순간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가 경성고공 졸업앨범에 '箱'이라는 웃긴 이름으로 자신을 표현하던 순간이나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총독부 기수의 자리를 그만두고 총독부에서 나오던 순간, 혹은 배천온천에서 피부가 까맣고 몸집이 작은 여자 금홍을 만나는 순간이 아닐까. 처음에 그 순간들은 다른 순간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했으니, 이상이 죽고 난 뒤에는 그런 결말로 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결정적 순간들이 됐다.

  이야기 작법에서는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이런 지점들은 플롯 포인트Plot Point라고 부른다. 플롯 포인트는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데, 대개의 이야기에는 두 개의 큰 플롯 포인트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3막 구조인 셈이다. 시드 필드 같은 시나리오 작가는 모든 영화는 시작하고 삼십 분이 지날 무렵에 첫번째 플롯 포인트를 지난다고 말한다. 대개 백이십 분짜리 영화라면 첫 플롯 포인트는 삼십 분에, 두번째 플롯 포인트는 구십 분쯤에 있다. 이 지점을 지나면 이야기의 방향이 크게 바뀌면서 주인공은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특히 첫번째 플롯 포인트를 가리켜 '돌아갈 수 없는 다리', 혹은 '불타는 다리'라고도 부른다. 1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경험하는데, 그러고 나면 다시는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pp91~92

 

▒ 그럼 이제 불 지르는 방법에 대해서 좀 알아보자. 소설에서 주인공이 지나간 다리를 불태우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우선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 등장하는 스밀라의 방식. 이사야라는 소년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자,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을 내리지만 스밀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 소설에서 스밀라가 자신의 다리를 불태우는 장면은 꽤 멋지다.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손을 내 집념에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다른 하나는 「파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피신 몰리토 파텔의 방식이다.

  배가 가라앉았다. 괴물이 내는 금속성 트림 같은 소리가 났다. 물건이 수면 위로 쏟아져나오더니 사라졌다. 모든 게 비명을 질러댔다. 바다며 바람, 내 마음까지. 구명보트에서 보니 물속에 뭔가가 있었다. 

  둘 다 다리가 불타기는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스밀라는 눈을 읽을 줄 아는 그녀의 캐릭터 설정 때문에 아이의 죽음에 책임감을 가지고 사건 속으로 뛰어든다. 반면에 파이는 자신의 성격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배가 가라앉았기 때문에 동물원의 아들로서 위태로운 조난생활을 시작한다. 이 두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차이는 소설의 톤을 결정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캐릭터 설정 때문에 다리를 불태우면 캐릭터 중심, 캐릭터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외부의 사건 때문에 다리가 불타면 플롯 중심이다. 캐릭터 중심의 소설은 내면적이고 사건의 진행이 느리며, 플롯 중심의 소설은 외면적이고 사건의 진행이 빠르다. pp95~97

 

▒ 짐짓. 사전에는 이 단어의 뜻이 이렇게 설명돼 있다.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으나 일부러 그렇게.' 우리가 욕망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에 그 욕망을 가리기 위해 짐짓 하는 말들이 바로 문학의 말들이다. 욕망의 말들을 뜨거운 불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대통령이 되고야 말겠어. 그 녀석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 거야. 현실의 우리는 너무나 입체적이고 복잡해서 이런 말을 할 때도 그게 과연 진심인지 아닌지 본인부터가 헷갈리는 경우가 많지만,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종이로 오려낸 사람들과 같아서 이런 뜨거운 욕망의 말들을 날것으로 입에 담다가는 그 자리에서 타버릴 것이다. 캐릭터가 자기 속마음만 말하지 않아도 그는 어느 정도 입체적이고 복잡한 인물이 된다.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다. 캐릭터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pp115~116

 

▒ 소설가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고 싶다면, 일단 연필을 꺼내서 동심원을 다섯 개 정도 그리면 되겠다. 지금 다들 그려보시라. 그리고 제일 안쪽에 '저울'이라고 쓰시라. 원래는 '가치관'이라고 써야 하지만 피차 그런 말은 드기만 해도 골이 아플 테니까 '저울'로 바꾸자. 저울이라는 건 이런 의미다. 한쪽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올려놓는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성장배경과 교육환경에 따라서 다들 다를 것이다. 그다음에는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의 순간이 생길 때마다 이 저울 위에다가 올려놓는다. 그렇게 해서 저울이 선택 쪽으로 기울어지면, 그게 바로 '욕망'이 된다.

  이렇게 해서 알아낸 욕망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두번째 동심원에다가 '원하는 것'이라고 쓴다. 여기까지 오면 지금까지 여러 번 말한 이야기 공식대로 욕망이 생겼으니 이제 이사람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다음 세번째 동심원에다가는 '감정'이라고 쓰고는 그 동심원을 반으로 나눈 뒤, 한쪽에는 '진짜 감정'이라고, 다른 쪽에다가는 '사회적 감정'이라고 쓴다. 여기까지가 바로 소설에서 다루는 캐릭터의 내면이 된다. 그럼 이제 이 세 개의 동심원에 빗금을 치자. 이 빗금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이라는 뜻이다. 어떤 캐릭터를 설명할 때, 이 빗금친 부분에 해당하는 것들은 쓰지 않는 게 좋겠다. 

··· 빗금친원들 바깥쪽에 원을 하나 더 그리자. 그다음, 안쪽 '진짜 감정'과 '사회적 감정'을 나눈 선을 제일 바깥쪽 원까지 그대로 이어서 긋는다. 그리고 '진짜 감정'의 바깥에는 '표정, 몸짓, 행동'이라고 쓴다. '사회적 감정'의 바깥쪽에는 '말'이라고 쓴다. 그다음에 마지막 동심원을 그린 뒤, 거기에는 '프로필'이라고 쓰고 '백문백답'이라고 읽는다. 빗금을 치지 않은 이 세 가지 영역이 바로 소설가가 글로 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캐릭터의 '표정, 몸짓, 행동' '말' '백문백답'. 소설가가 캐릭터와 관련해서 쓸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pp125~126 

 

▒ 이처럼 소설 속의 대화는 대화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고, 말하는 사람의 속내를 감추는 역할을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속내를 감춘다, 이게 중요하다. 캐릭터의 동심원을 그렸으니까 이제 알겠지만, 이때 속내라는 건 '저울(가치관), 원하는 것(욕망), 감정'이다. p128

 

▒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합되지 않은 새로운 표현을 발견하되,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는 표현을 찾아낸다면 금상첨화다. 예컨대 목수라면 "그 아이가 삶의 허무를 견딜 수 없었나봐"라는 문장을, '이를테면' 어떻게 달리 말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교사가 '이를테면'이라는 부사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위의 말을 다시 표현한다면 두 사람의 문장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막 목공일을 배우기 시작한 목수와 대목이 된 육십대 목수의 표현은 또 어떻게 다를 것인가? 여기까지만 해도 꽤 구체적으로 들어간 셈인데, 소설은 이 세상에 유일한 한 사람을 다루는 일이니 그보다 더 들어가야만 한다. 일자리를 찾다가 실패하고 결국 목공일을 배우게 된 청년과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뒤에 목공일을 배우게 된 청년의 시선은 또 어떻게 다를 것인가?

  결국 소설의 대사란 진부한 욕망의 말들을 은폐하기 위해 참신한 문장으로 다시 표현하는 데 1차적인 목표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데 2차적인 목표가 있는 셈이다. pp132~133

 

▒ 오빤 정승 스타일!  p137

 

▒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 달라진 사람은 말, 표정 및 몸짓, 행동으로 자신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다는 것. ···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p141

 

▒ 좌절과 절망이 소설에서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 감정은 이렇게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도에 가면 타지마할이 있다. 듣기로는 총애하던 아내 뭄타즈 마할이 죽자,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이만 명의 노동자를 동원해서 이십이 년 동안 건설한 것이라던데, 이면 명이 만든 타지마하나 한국 노인 혼자서 돌을 쌓아 만든 남대문이나 본질은 같다. 거기에 한때 좌절과 절망이 있었다는 것. 예로부터 예술은 절망 속에서 꽃핀다는 말이 있었는데, 좌절과 절망이 선사하는 이 거대한 생산력을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위대한 예술은 거기 한때 큰 좌절과 절망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pp150~151

 

▒ 따라서 소설을 쓰는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주인공에 더 깊이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만 한다. 먼저 캐릭터의 측면에서. 앞에서 말했다시피 다른 등장인물보다 더 구체적인 정보를 더 많이 알려줘서 독자가 주인공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다음, 플롯의 측면에서. 주인공을 거듭해서 좌절시켜서 독자가 그를 걱정하게 만든다. 한번 좌절할 때마다 독자들은 주인공 쪽으로 한발 더 다가간다. p163

 

▒  내가 지금 말하는 게 문체와 유사하긴 하지만, 문체만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한 작가가 쓰는 모든 글에 남는, 그만의 확실한 서명이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그만의 세계, 한 작가는 바로 이것 때문에 다른 작가와 구별된다. 재능 때문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 건 우리 주위에도 많다. 그러나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시각을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우리 주위에는 그런 작가가 남을 것이다. _레이먼드 카버 p167

 

▒  내가 생각할 때, 다른 글은 모르겠으나 소설의 경우에는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작가 자신마저도 귀찮게 만드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자기가 쓰는 문장이 소설에 합당한 문장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맡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이뤄졌다면, 소설 문장을 쓰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만져보게 할 수도 없는 단어들로 이뤄져 있다면 소설이 아니라 다른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사랑은 나눠줄 때 아름다워진다'는 문장을 썼다고 치자. 누구도 '사랑'을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맡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이 문장은 소설의 문장에 적합하지 않다. 대신에 '다른 사람을 안으면 둘 모두 따뜻해진다'라고 하면 소설의 문장에 가까워진다. '다른 사람을 안는 일'은 '사랑'보다는 더 잘 보이니까. 그래서 소설을 읽는 일은 소설 속 캐릭터의 감각을 대신 맛보는 일이기도 하다.  p213~214

 

▒  그 다음부터는 상상력이 필요한데,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문장은 그다지 많지 않다. 친구들에게 들려줄 때는 정말 멋진 이야기였는데, 그걸 문장으로 옮기려니까 한 줄도 안 나오는 건 문학적 재능이 없거나 문예창작과를 안 나왔거나 부모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쓰려는 그 이야기에 대해 사실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이 고통을 해결하고 싶다면 벽에다 머리를 박을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자기 바깥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러려면 충분히 시간을 두고 자신이 문장으로 쓰려는 것들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자료도 찾아보고 다른 사람이 쓴 글도 읽어보고 노트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끼적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그림도 그려본다. 쓰려는 소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일을 해도 좋다. 잘 쓰려거나 많이 쓰려거나, 심지어는 뭘 쓰려고 하지 않아도 좋다. 그보다는 자신이 잘 몰랐던 일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흥미롭고, 미처 몰랐던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뜻밖의 기쁨이다. 날마다 이 재미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 그게 바로 소설가의 일이다. pp23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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