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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by 꿈의 페달을 밟고 2022. 5. 16.

- 김선우

 

 

 

내 기억 속 아직 풋것인 사랑은

감꽃 내리던 날의 그애

함석집 마당가 주문을 걸듯

덮어놓은 고운 흙 가만 헤치면

속눈썹처럼 나타나던 좋 · 아 · 해

얼리꼴레 아이들 놀림에 고개 푹 숙이고

미안해ㅡ 흙글씨 새기던

당두마을 그애

마른 솔잎 냄새가 나던

 

이사오고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어느덧 나는 남자를 알고

귀향길에 때때로 소문만 듣던 그애

아버지 따라 태백으로 갔다는

공고를 자퇴하고 광부가 되었다는

급행열차로는 갈 수 없는 곳

그렇게 때로 간이역을 생각했다

사북 철암 황지 웅숭그린 역사마다

한그릇 우동에 손을 덥히면서

천천히 동쪽 바다에 닿아가는 완행열차

 

지금은 가리봉 어디 청공일 한다는

출생신고 못한 사내아이도 하나 있다는

내 추억의 간이역

삶이라든가 용접봉, 불꽃, 희망 따위

어린날 알지 못했던 말들

어느 담벼락 밑에 적고 있을 그애

한 아이의 아버지가 가끔씩 생각난다

당두마을, 마른 솔가지 냄새가 나던

맵싸한 연기에 목울대가 아프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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