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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블록 1 - 엉망이었던 입사 면접에 대해 이야기 해볼 것. "토익 점수가 아주 높으시네요." "감사합니다." (너무 겸손했나? 늘 그 정도는 나온다고 자신 있게 말했어야 했나?) "그런데 집이 좀 머시네요." "되면 출퇴근이야 해야죠." (야! 그 모양으로 대답하면 어떡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합격만 시켜주시면 열심히 다니겠다거나, 아니면 직주근접을 지향하기에 가까이 이사를 오겠다고 했어야지. 너 이런 식으로 굴면 떨어져.)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떨어졌다. 어차피 그 회사가 있는 강남으로 이사 갈 돈 같은 건 없었다. 거긴 반지하도 비싼 동네겠지. 하지만 그녀는 두더지처럼, 토끼처럼 땅 속에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만큼 살아보니 견딜 수 없다는 결론이 들었다. (지금 세 번째로 반지하에 세들어 살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는 옥탑을 선호했다. 2년 단위로 반.. 2022. 8. 11.
눈꽃선인장 눈앞이 하얗고 어지러워 잠깐 휘청거리다 화분 하나를 엎었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을 뻔했다. 아버지의 눈꽃선인장을 밟은 것이다. 완전히 납작해져 있었다. 버드나무 같은 오빠가 다육식물 같은 새언니를 인사시킬 때 함께 등장한 녀석이었다. 아버지의 실눈이 커지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왜 하필 이게 깨졌을까. 베란다에 식물이 한두 개도 아닌데. “야, 나 선인장 화분 깼다.” 나는 다짜고짜 희재에게 전화해서 목청을 높였다. “그래, 언젠가 한 번은 그럴 줄 알았지.” “장난 아니라고.” 콧김 뿜으며 웃는 소리가 다 들렸다. “다시 심어놓고 분갈이 했다고 해.” “못 해. 휘청거리다 밟았어.” 이십년지기 친구의 콧김이 멈췄다. “아버지 출장에서 언제 오시지?” “월요일.” “아직 꽃집 문 열 시간.. 2022. 4. 14.
전학생, 기억하세요? -두 번째 편지-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는가요? 오늘 저는 다가오는 겨울을 맞아 온 집안의 창문이란 창문에 (대부분 사람은 이름도 모를 지방 소도시의 창이 많은 단독주택으로 이사 왔습니다) 모두 단열 에어캡을 붙이느라 아들의 하원 시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특별한 날이 아닐 때는 선생님과 상담하던 시기의 루틴대로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바닥 청소며, 빨래 널고 개기며, 설거지며, 반찬 만들기며, 또 설거지며 모두 해대고 그게 대충 끝날 2시쯤부터 아들이 오는 4시까지 무언가 주절주절 쓰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쓰는 것이 나를 살리는 행위다, 고 생각하면서요. 얼마 전부터 저는 또다시 우울함이 재발해 어떻게 하면 남몰래 죽을 수 있을지 그 방법에 대해 골몰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심리상담을 받던 시기나.. 2022. 4. 14.
전학생, 기억하세요? -첫 번째 편지-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마음을 열고 들어줄 사람은 선생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선생님을 뵙고 직접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쉬울 뿐입니다. 짧지 않은 편지, 두서없는 글이 될지 모르지만, 부디 끝까지 읽어주세요. 전학생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상담 시간에 몇 번 언급했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려나요? 전학생은 등교 첫날 배정받은 창가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밖을 내다봤습니다. 애들에게 말을 붙이고 싶어서 쭈뼛거리는 전학생이 아니라 오히려 반 아이들이 다가올 틈을 주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1교시에 물리 선생님이 물결처럼 차르르 떨어지는 소재의 치마를 입고 또각또각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그날은 물리 선생님이 소개팅을 한다는 소문이.. 2022. 4. 14.